샤워 한 번 하면 욕실 거울이 뿌옇게 덮여 면도를 하려면 손으로 닦아야 했고, 닦은 자리는 금세 다시 흐려졌다. 거울에 김이 서리는 건 거울 표면이 차가워 수증기가 아주 작은 물방울로 맺히기 때문이라, 물방울이 맺히지 못하게 하거나 맺혀도 퍼져서 얇은 막이 되게 하면 된다고 해서 몇 가지를 해 봤다.
가장 먼저 시도한 건 면도 크림이었다. 거울에 면도 크림을 얇게 펴 바르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 내면 계면활성제 성분이 얇게 남아 물방울이 구슬처럼 맺히지 않고 평평하게 퍼진다고 했다. 실제로 다음 날 샤워 뒤 거울을 보니 크림을 바른 자리는 맑고 안 바른 자리는 뿌옇게 남아 경계가 뚜렷했다. 효과는 일주일쯤 갔다.
주방세제도 같은 원리로 통했다. 물에 주방세제를 몇 방울 풀어 거울에 뿌리고 물기가 남지 않게 마른 천으로 닦아 내니 면도 크림과 비슷하게 김이 덜 서렸다. 다만 세제를 너무 많이 쓰면 거울에 얼룩이 남으니 아주 조금만 쓰고 완전히 마른 천으로 마무리하는 게 요령이었다. 비누를 거울에 살짝 문질러 닦는 방법도 원리는 같았다.
임시로 급할 때는 헤어드라이어가 빨랐다. 뿌옇게 된 거울에 뜨거운 바람을 몇 초 불면 표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물방울이 증발해 바로 맑아졌다. 샤워 전에 거울에 잠깐 더운 바람을 불어 미리 데워 두면 김이 훨씬 늦게 서린다는 것도 알게 됐다. 거울이 차가운 게 문제라면 거울을 따뜻하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근본적으로는 욕실 습기를 빼는 게 답이었다. 샤워할 때 환풍기를 켜고 끝난 뒤에도 십오 분쯤 돌리며 문을 살짝 열어 두었더니 거울뿐 아니라 벽 타일의 물방울도 훨씬 빨리 말랐다. 찬물을 먼저 틀어 놓고 나중에 온수로 바꾸면 욕실 공기가 한 번에 뜨거워지지 않아 김이 덜 생긴다는 것도 써 보니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면도 크림으로 거울을 닦고 샤워 때 환풍기를 습관처럼 켠다. 매일 아침 손바닥으로 거울을 문지르던 일이 사라진 것만으로 욕실 쓰는 기분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