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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 목욕탕에 몇 년 만에 다시 갔다

    집 샤워기로만 씻은 지 한참 됐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어릴 땐 주말마다 아버지 손에 끌려 동네 목욕탕에 갔는데, 그게 언제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났다. 마침 집 근처에 오래된 목욕탕이 아직 영업 중이라길래 큰맘 먹고 가봤다.

    요금이 구천 원이었다. 옛날 생각하면 비싸졌다 싶었는데, 들어가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평상에 앉아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운터 아주머니가 수건을 두 장 건네주는데 그 풍경이 하나도 안 변했더라.

    탕에 들어가는 순간 어우 소리가 절로 났다. 뜨거운 물에 어깨까지 담그니까 며칠 뭉쳐 있던 게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책상 앞에 종일 앉아 있느라 굳어 있던 목이 특히 시원했다. 한 십 분 있다가 너무 더워서 냉탕에 발만 담갔는데, 그 온도 차가 또 묘하게 시원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왜 그렇게 탕에 오래 앉아 계셨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때를 미는 건 좀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혼자 등을 미는 게 잘 안 돼서 결국 대충 닿는 데까지만 했다. 옆에서 한 할아버지가 서로 밀어주자고 하셨는데, 쑥스러워서 괜찮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부탁드릴걸 그랬다.

    나와서 마신 바나나우유가 또 별미였다. 목욕탕 우유는 왜 더 맛있는 건지 모르겠다. 머리 말리고 나오니 두 시간이 훌쩍 갔는데, 몸이 솜처럼 가벼웠다.

    샤워야 집에서 매일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푹 담그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다음엔 등 밀어달라는 부탁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

  • 비 오는 일요일, 동네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비가 오는 일요일이었다. 딱히 약속도 없고 집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우산을 챙겨 동네 도서관에 갔다. 학생 때 이후로 도서관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걸어서 15분 거리에 시립 도서관이 있다는 걸 이사 온 지 2년 만에 처음 제대로 가봤다.

    들어가니까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자리가 거의 찼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 자격증 책에 형광펜을 긋는 사람, 신문을 펴놓고 조는 어르신까지. 다들 조용한데 묘하게 공기가 꽉 차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3층 일반 자료실로 올라가 창가 자리를 하나 잡았다.

    딱히 읽을 책을 정하고 간 게 아니라서, 서가 사이를 한참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제목이 눈에 들어온 여행 에세이를 한 권 뽑아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닌 책을 그냥 읽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걸 보면서 두어 시간을 읽었다. 중간에 졸리면 잠깐 멍하니 있다가 다시 읽고. 집에서였으면 폰을 백 번은 봤을 텐데, 이상하게 도서관에선 폰을 꺼낼 생각이 안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집중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는 분위기였다.

    다 못 읽은 책은 회원증을 만들어 빌려 왔다. 회원증 만드는 데 신분증만 있으면 됐고 2분도 안 걸렸다. 두 주 동안 다섯 권까지 빌릴 수 있다길래 욕심내서 두 권을 더 집어 왔다.

    집에 오는 길에도 비는 계속 왔는데 기분은 아까보다 한결 가벼웠다. 돈 한 푼 안 쓰고 반나절을 알차게 보낸 게 오랜만이었다. 그 뒤로 주말에 갈 데 없으면 도서관을 떠올린다. 가까이 있는데 모르고 산 게 아까울 정도다.

  • 10년 다닌 미용실이 문을 닫던 날

    같은 미용실을 거의 10년을 다녔다. 처음 갔을 때 대학생이었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원장님은 내 머리카락이 어느 방향으로 뻗치는지, 어디를 치면 안 되는지를 나보다 더 잘 알았다. 말이 많은 분은 아니었는데, 그 적당한 조용함이 편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예약 없이 들렀다. 그런데 거울 앞에 앉자마자 원장님이 다음 달에 가게를 접는다고 했다. 건물 임대료가 올라서 더는 못 버티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동안 가위질 소리만 들렸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오는데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단순히 머리 자르는 곳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20대의 어떤 부분이 같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좀 과한 생각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간 날, 원장님은 평소보다 오래 머리를 만져줬다. 계산할 때 천 원을 깎아주면서 “그동안 와줘서 고마웠어요”라고 했다. 나는 멋쩍게 웃기만 하고 별말을 못 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나도 고마웠다고 말할 걸 그랬다.

    지금은 집 근처 다른 곳을 다닌다. 나쁘진 않은데, 매번 내 머리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10년이 쌓인 편안함은 그렇게 쉽게 다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