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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년필을 한 자루 사서 일기를 쓴다

    충동적으로 만년필을 한 자루 샀다. 문구 좋아하는 사람들 글을 구경하다가, 나도 글씨를 좀 정성껏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입문용으로 유명한 삼만 원대 모델을 골랐다.

    처음엔 잉크 넣는 것부터 헤맸다. 컨버터라는 걸 돌려서 잉크를 빨아들이는 건데, 손에 파란 잉크가 다 묻어서 한참 닦았다. 종이에 써보니 사각거리는 소리가 볼펜이랑 완전히 달랐다. 그 소리가 좋아서 의미 없이 동그라미만 계속 그렸다.

    그날부터 자기 전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오늘 뭐 먹었고, 누구랑 통화했고, 기분이 어땠고. 키보드로 쓸 땐 길게 늘어놓는데, 손으로 쓰니까 자연스럽게 짧고 솔직해졌다.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어서 그런지, 괜히 꾸미려던 말도 그냥 솔직하게 적게 되더라.

    며칠 안 쓰면 펜촉이 말라서 잉크가 안 나왔다. 그게 좀 귀찮았다. 그래서 오히려 매일 쓰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안 쓰면 펜이 토라진다고 생각하니 웃기면서도 손이 갔다.

    한 달쯤 쓰니 글씨가 아주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명필은 아니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쓰는 그 시간 자체가 하루를 정리하는 느낌이라 좋았다. 잠도 더 잘 오는 것 같고.

    비싼 펜이 좋은 글씨를 만들어주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손에 쥐는 도구가 좋으니 자꾸 쓰고 싶어지긴 했다. 그 핑계로라도 매일 몇 줄 남기는 습관이 생긴 게 제일 큰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