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calderwave

  • 아침에 휴대폰 대신 라디오를 다시 켰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휴대폰부터 들여다보는 게 습관이었다. 알람을 끄면서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대로 누워서 뉴스랑 영상까지 보다 보면 삼십 분이 훌쩍 갔다. 일어나기도 전에 머리가 시끄러워지는 그 기분이 싫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다시 켜보기로 했다. 안 쓰던 작은 라디오가 서랍에 있어서 건전지만 갈아 끼웠다. 주파수를 맞추는데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니까 그것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아침 방송을 틀어두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진행자가 날씨 얘기하고, 청취자 사연 읽어주고, 사이사이 노래가 나오는데 그게 화면 없이 귀로만 들어오니까 마음이 한결 느긋했다. 한 번은 내 또래쯤 되는 사람의 출근 사연이 나왔는데, 괜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피식 웃었다. 휴대폰처럼 나를 붙잡아두지 않는 게 제일 좋았다.

    처음 며칠은 그래도 손이 자꾸 휴대폰으로 갔다. 사연을 듣다가도 무심코 화면을 켜고 있더라. 그럴 때마다 다시 내려놓고 라디오 소리에 집중하려고 애를 좀 썼다.

    좋은 점은 그 사이에 다른 걸 한다는 거였다. 라디오 들으면서 이불 정리하고, 물 한 잔 마시고, 창문도 열고. 화면을 안 보니까 손이 자유로워서 아침에 하는 일이 늘었다.

    모든 아침을 이렇게 보내진 못한다. 늦잠 잔 날은 그냥 정신없이 나가니까. 그래도 여유 있는 날 아침에 라디오를 켜두면, 하루를 좀 더 사람답게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 만년필을 한 자루 사서 일기를 쓴다

    충동적으로 만년필을 한 자루 샀다. 문구 좋아하는 사람들 글을 구경하다가, 나도 글씨를 좀 정성껏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입문용으로 유명한 삼만 원대 모델을 골랐다.

    처음엔 잉크 넣는 것부터 헤맸다. 컨버터라는 걸 돌려서 잉크를 빨아들이는 건데, 손에 파란 잉크가 다 묻어서 한참 닦았다. 종이에 써보니 사각거리는 소리가 볼펜이랑 완전히 달랐다. 그 소리가 좋아서 의미 없이 동그라미만 계속 그렸다.

    그날부터 자기 전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오늘 뭐 먹었고, 누구랑 통화했고, 기분이 어땠고. 키보드로 쓸 땐 길게 늘어놓는데, 손으로 쓰니까 자연스럽게 짧고 솔직해졌다.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어서 그런지, 괜히 꾸미려던 말도 그냥 솔직하게 적게 되더라.

    며칠 안 쓰면 펜촉이 말라서 잉크가 안 나왔다. 그게 좀 귀찮았다. 그래서 오히려 매일 쓰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안 쓰면 펜이 토라진다고 생각하니 웃기면서도 손이 갔다.

    한 달쯤 쓰니 글씨가 아주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명필은 아니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쓰는 그 시간 자체가 하루를 정리하는 느낌이라 좋았다. 잠도 더 잘 오는 것 같고.

    비싼 펜이 좋은 글씨를 만들어주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손에 쥐는 도구가 좋으니 자꾸 쓰고 싶어지긴 했다. 그 핑계로라도 매일 몇 줄 남기는 습관이 생긴 게 제일 큰 소득이다.

  • 동네 목욕탕에 몇 년 만에 다시 갔다

    집 샤워기로만 씻은 지 한참 됐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어릴 땐 주말마다 아버지 손에 끌려 동네 목욕탕에 갔는데, 그게 언제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났다. 마침 집 근처에 오래된 목욕탕이 아직 영업 중이라길래 큰맘 먹고 가봤다.

    요금이 구천 원이었다. 옛날 생각하면 비싸졌다 싶었는데, 들어가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평상에 앉아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운터 아주머니가 수건을 두 장 건네주는데 그 풍경이 하나도 안 변했더라.

    탕에 들어가는 순간 어우 소리가 절로 났다. 뜨거운 물에 어깨까지 담그니까 며칠 뭉쳐 있던 게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책상 앞에 종일 앉아 있느라 굳어 있던 목이 특히 시원했다. 한 십 분 있다가 너무 더워서 냉탕에 발만 담갔는데, 그 온도 차가 또 묘하게 시원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왜 그렇게 탕에 오래 앉아 계셨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때를 미는 건 좀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혼자 등을 미는 게 잘 안 돼서 결국 대충 닿는 데까지만 했다. 옆에서 한 할아버지가 서로 밀어주자고 하셨는데, 쑥스러워서 괜찮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부탁드릴걸 그랬다.

    나와서 마신 바나나우유가 또 별미였다. 목욕탕 우유는 왜 더 맛있는 건지 모르겠다. 머리 말리고 나오니 두 시간이 훌쩍 갔는데, 몸이 솜처럼 가벼웠다.

    샤워야 집에서 매일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푹 담그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다음엔 등 밀어달라는 부탁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

  • 달고 살던 믹스커피를 끊어봤다

    하루에 믹스커피를 네다섯 잔씩 마셨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나른한 오후에 또 한 잔. 달달한 게 당길 때마다 손이 갔다.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혈당이 살짝 높게 나왔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

    단번에 끊는 건 무리일 것 같아 하루 두 잔으로 먼저 줄였다. 그런데 이게 더 힘들었다. 몇 잔째인지 세는 것도 일이고, 참다 보면 결국 더 마시게 됐다. 차라리 안 마시는 게 낫겠다 싶었다.

    사흘째가 제일 힘들었다. 오후만 되면 머리가 멍하고 단 게 미치도록 당겼다. 사탕을 입에 물고 버티기도 했다. 동료가 믹스커피를 타는 냄새가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 탕비실 봉지 커피 통을 일부러 안 쳐다보고 지나치는 게 하루의 작은 숙제였다.

    대신 물을 많이 마셨다. 믹스커피 생각이 날 때마다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씩 마셨다. 처음엔 밍밍하기만 했는데, 일주일쯤 지나니 단맛에 둔해졌는지 그럭저럭 견딜 만해졌다. 보리차 티백을 한 통 사다 책상 서랍에 넣어두니 손 뻗기도 편했다.

    2주가 지나자 오후에 멍한 증상이 오히려 줄었다. 그동안 믹스커피의 단맛으로 억지로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잠도 전보다 빨리 들었다. 식후에 뭔가 허전한 느낌은 여전했지만, 그건 따뜻한 차로 메웠다.

    완전히 끊었다고는 못 한다. 가끔 정말 피곤한 날엔 한 잔 타 마신다. 다만 하루 다섯 잔이 일주일에 한두 잔으로 줄었으니 큰 변화다. 다음 검진 때 혈당 수치가 어떻게 나올지, 이번엔 좀 기대가 된다.

  • 친구에게 손편지를 오랜만에 부쳐봤다

    오래 연락이 뜸했던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려다 문득, 톡으로 한 줄 보내기엔 좀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편지를 쓴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문구점에 들러 편지지랑 봉투를 샀다. 둘이 합쳐 3천 원이었다. 막상 펜을 들고 앉으니 첫 문장이 안 써졌다. 키보드로는 술술 쓰던 말이 손으로 쓰려니 어색하고, 글씨도 삐뚤빼뚤했다.

    두 장을 버리고 세 번째에야 끝까지 썼다. 맞춤법이 틀린 것 같아 중간에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다. 지우개로 못 지우니 한 글자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였다. 그 불편함이 묘하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화면을 안 보고 펜만 쥐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편지를 들고 우체국에 갔다. 우표를 사서 직접 붙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직원이 며칠이면 도착한다고 알려줬다. 빨간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는데, 답장을 기다리던 옛날 기분이 잠깐 떠올랐다.

    사흘 뒤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편지 받고 한참을 웃다 울다 했다고. 요즘 누가 편지를 쓰냐며, 결혼식보다 그 편지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톡으로 보냈으면 절대 안 나왔을 반응이었다.

    손편지 한 통에 든 돈은 우표까지 다 해도 사천 원이 안 됐다. 그런데 그 효과는 어떤 비싼 선물보다 컸다. 느리고 불편한 게 오히려 마음을 더 담는다는 걸 새삼 알았다. 조만간 부모님께도 한 통 써볼 생각이다.

  • 장마철 베란다 곰팡이랑 한 달을 싸웠다

    장마가 시작되고 일주일쯤 지나니 베란다 벽 모서리에 거뭇한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바닥만 하던 게 며칠 사이 창틀 실리콘까지 번졌다. 빨래를 안에 널어 말리던 탓이 컸다.

    일단 마트에서 곰팡이 제거제를 하나 샀다. 4천 원짜리 스프레이였다. 뿌리고 30분 두면 거짓말처럼 까만 게 옅어졌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같은 자리에 또 피어났다. 원인을 안 잡으니 계속 도돌이표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습기가 문제였다. 베란다 문을 거의 닫고 지냈고, 환기를 안 했다. 그날부터 아침저녁으로 30분씩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비 안 오는 날엔 선풍기를 베란다 쪽으로 돌려 바람을 보냈다.

    빨래는 가능하면 건조기에 돌리고, 어쩔 수 없이 널 땐 제습기를 같이 틀었다. 제습기 물통을 비우다 보면 하루에 받아지는 물이 한 통 가득이었다. 그 물을 볼 때마다 그동안 이 습기를 다 안고 살았구나 싶었다. 신발장 안에도 제습제를 몇 개 넣어뒀더니 눅눅하던 냄새가 한결 가셨다.

    한 2주쯤 지나니 새로 피는 곰팡이가 눈에 띄게 줄었다. 실리콘에 깊게 박힌 자국은 끝까지 안 지워져서, 그 부분은 곰팡이 전용 젤을 발라 하룻밤 덮어뒀다. 다음 날 닦아내니 꽤 옅어졌다.

    결국 제거제보다 환기가 답이었다. 약은 이미 핀 걸 지우는 거고, 안 피게 하는 건 결국 바람이었다. 장마가 끝날 때까지 창문 여는 일만큼은 거르지 않을 생각이다. 벽 색이 돌아온 걸 보면 그 30분이 안 아깝다.

  • 비 오는 일요일, 동네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비가 오는 일요일이었다. 딱히 약속도 없고 집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우산을 챙겨 동네 도서관에 갔다. 학생 때 이후로 도서관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걸어서 15분 거리에 시립 도서관이 있다는 걸 이사 온 지 2년 만에 처음 제대로 가봤다.

    들어가니까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자리가 거의 찼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 자격증 책에 형광펜을 긋는 사람, 신문을 펴놓고 조는 어르신까지. 다들 조용한데 묘하게 공기가 꽉 차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3층 일반 자료실로 올라가 창가 자리를 하나 잡았다.

    딱히 읽을 책을 정하고 간 게 아니라서, 서가 사이를 한참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제목이 눈에 들어온 여행 에세이를 한 권 뽑아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닌 책을 그냥 읽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걸 보면서 두어 시간을 읽었다. 중간에 졸리면 잠깐 멍하니 있다가 다시 읽고. 집에서였으면 폰을 백 번은 봤을 텐데, 이상하게 도서관에선 폰을 꺼낼 생각이 안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집중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는 분위기였다.

    다 못 읽은 책은 회원증을 만들어 빌려 왔다. 회원증 만드는 데 신분증만 있으면 됐고 2분도 안 걸렸다. 두 주 동안 다섯 권까지 빌릴 수 있다길래 욕심내서 두 권을 더 집어 왔다.

    집에 오는 길에도 비는 계속 왔는데 기분은 아까보다 한결 가벼웠다. 돈 한 푼 안 쓰고 반나절을 알차게 보낸 게 오랜만이었다. 그 뒤로 주말에 갈 데 없으면 도서관을 떠올린다. 가까이 있는데 모르고 산 게 아까울 정도다.

  • 편의점 도시락만 먹던 내가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점심을 거의 매일 편의점에서 때웠다. 회사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기도 했고,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도시락 하나에 컵라면, 아니면 삼각김밥 두 개로 끝내는 날이 많았다. 한 끼에 5천 원 안팎인데, 한 달 모으니 생각보다 큰돈이었다.

    어느 날 편의점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문득 이걸 언제까지 먹나 싶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매일 비슷한 반찬에 미지근한 밥을 먹다 보니 점심시간이 하나도 안 즐거웠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보기로 했다.

    첫날부터 거창하게는 못 했다.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제육볶음을 통에 담고 밥만 새로 펐다. 그것도 아침에 허둥지둥 싸느라 국물이 가방 안에서 새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 뒤로 밀폐가 잘 되는 통을 따로 하나 샀다.

    일주일쯤 하니까 요령이 생겼다. 주말에 반찬 두세 개를 미리 만들어두고, 아침엔 밥이랑 반찬만 담으면 5분이면 끝났다. 계란말이랑 멸치볶음 같은 건 며칠 둬도 괜찮아서 든든했다. 점심시간에 탕비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데, 따뜻한 밥을 먹는다는 게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한 달 해보니 점심값이 거의 반으로 줄었다. 그것도 좋았지만, 사실 더 좋았던 건 내가 뭘 먹는지 알고 먹는다는 느낌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은 나트륨이 어쩌고 하는 표를 봐도 와닿지 않았는데, 직접 싸니까 간을 내가 조절하게 됐다.

    매일 싸진 못한다. 늦잠 잔 날이나 전날 반찬이 떨어진 날엔 그냥 편의점에 간다. 그래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도시락을 싼다. 점심시간에 내 통을 여는 그 잠깐이 하루 중 꽤 괜찮은 시간이 됐다.

  • 안 입는 옷을 당근에 다 내놨더니

    옷장을 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분명 입을 옷이 없는데 옷장은 미어터졌다. 작년 봄에 큰맘 먹고 산 재킷은 두 번 입고 안 입었고, 살 빠지면 입겠다고 모셔둔 청바지는 3년째 그 자리에 있었다. 어느 주말에 마음먹고 다 꺼내봤더니 안 입은 지 1년 넘은 게 스무 벌이 넘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입지도 않으니, 결국 당근에 올리기로 했다. 처음엔 사진 찍는 게 일이었다. 옷을 옷걸이에 걸어서 벽에 붙여놓고 찍고, 보풀 있는 건 솔직하게 적었다. 가격은 다들 헐값에 올리길래 나도 두세 벌에 만 원, 좋은 건 만 원 안팎으로 매겼다.

    반응이 생각보다 빨랐다. 거의 새 거나 다름없던 코트는 올린 지 10분 만에 채팅이 세 개나 왔다. 동네 카페 앞에서 만나 건네주는데, 사가는 분이 잘 입겠다고 하니까 묘하게 뿌듯했다. 옷이 버려지는 게 아니라 어디 가서 또 입힌다는 게 좋았다.

    물론 안 팔리는 것도 있었다. 유행 지난 무늬 셔츠 같은 건 일주일 내내 조회수만 늘고 아무도 안 찾았다. 그런 건 결국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솔직히 다 팔겠다는 욕심을 버리니까 마음이 편했다.

    2주 동안 정리하고 보니 통장에 8만 원쯤 들어와 있었다. 큰돈은 아닌데, 안 입던 옷이 돈이 되고 옷장에 빈 공간이 생긴 게 더 컸다. 이제 옷장을 열면 뭐가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그 뒤로는 옷을 살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이거 안 입으면 또 당근에 올려야 하는데, 그 귀찮음을 떠올리면 충동구매가 줄더라. 비우는 게 사는 것보다 손이 더 가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 10년 다닌 미용실이 문을 닫던 날

    같은 미용실을 거의 10년을 다녔다. 처음 갔을 때 대학생이었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원장님은 내 머리카락이 어느 방향으로 뻗치는지, 어디를 치면 안 되는지를 나보다 더 잘 알았다. 말이 많은 분은 아니었는데, 그 적당한 조용함이 편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예약 없이 들렀다. 그런데 거울 앞에 앉자마자 원장님이 다음 달에 가게를 접는다고 했다. 건물 임대료가 올라서 더는 못 버티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동안 가위질 소리만 들렸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오는데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단순히 머리 자르는 곳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20대의 어떤 부분이 같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좀 과한 생각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간 날, 원장님은 평소보다 오래 머리를 만져줬다. 계산할 때 천 원을 깎아주면서 “그동안 와줘서 고마웠어요”라고 했다. 나는 멋쩍게 웃기만 하고 별말을 못 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나도 고마웠다고 말할 걸 그랬다.

    지금은 집 근처 다른 곳을 다닌다. 나쁘진 않은데, 매번 내 머리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10년이 쌓인 편안함은 그렇게 쉽게 다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